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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3 콜린윌슨의 잔혹
  2. 2010.08.23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 현대와 과거 그리고 전통과 신문명
2010. 8. 23. 13:20

콜린윌슨의 잔혹

외국 출장을 가기전엔 반드시 인천공항 서점에서 한권이상의 책을 사서 출국한다. 평소 책을 안읽는것은 아니지만 비행기안에서나 호텔에서 사람을 기다리다 무료할때 소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보통 역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사보았다.

유명한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는 마지막편을 제외하고는 저번 출장때 완독해버렸고, 이번엔 비쟈티움 연대기나 한국어판 하얀거탑을 봐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서점엔 아직 그책들이 구비되지 않아 다른 책을 고르던중 콜린윌슨의 잔혹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15년전에 시사일본어의 일본어컬럼(수필형식의 컬럼)을 읽었을때가 기억난다.

그 수필의 중요내용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이라는 주제였다.

"인간은 원래 매우 잔인하다. 동물은 오로지 본능에 의해서 살육을 하고 그것을 밑천삼아 자기와 자신종족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발전이나 자기유지에 전혀 불필요한 살육을 자행한다.

어려서 남자아이라면 거의 다 잠자리를 잡아쥐어주면 통속안에 가뒀다가 후에는 잠자리를 꺼내 다리를 모두 갈기갈기 찢어서 죽인다.

시냇가에서 한가하게 개구리잡기를 하는 천진난만한 소년들이 있다. 인간으로 보면 아주 한가하고 느긋한 시골풍경으로 묘사되지만 개구리들에게는 아주 큰 비극이다. 결국엔 소년들이 개구리들을 돌로 때려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년들이 어른이 되고 성인이 되어 조카나 아들들을 위해 개구리나 잠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그런 무자비한 살상은 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성인이 된 소년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인간과 사회속 교육,경험속에서 생명은 고귀한것이라는 사회적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천진난만 이라는 단어는 얼핏보기에는 순수한 아이들을 말하는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아주 무서운것이 있다"

콜린윌슨의 잔혹은 위의 수필이 말한것처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그 잔혹함의 대상이 동물이나 다른종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잔혹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저지르는 살인,강간,약탈,방화 그리고 잔인성에 대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역사상 지배계급이나 지배자가 피지배계급이나 피지배자에게 행한 잔혹한 사실과 침략자가 피침략자에게 행한 잔혹적 사실, 근대에 들어서의 흉악한 범죄사실과 전쟁의 잔혹적 사실들에 대하여 인간은 왜 잔혹한 동물인지에 대하여 많은 예를 통하여 규명하고 있다.

또한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왜 인간이 잔혹한 일들을 벌리는지에 대한 인간실체의 메카니즘을 규명하려 하였다.

과연 인간은 살인을 하게끔 진화된 종인가 하는 물음이다.

예로 북경원인의 유골주의에는 두개골이 구멍난 동종의 유골들이 발굴되었다.

이는 인류의 조상격으로 볼수있는 원인들이 동종의 북경원인을 먹었던것을 증명하는것이다.

이에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유인원종과 별개로 동종을 먹고 살육을 한것이라는 가설을 하나의 예를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기재되어 있다.

인간이 포함된 영장류는 원래 초식동물게열로서 동종의 동료들을 먹이로 탐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전쟁이나 살인,강간등을 행하는 종이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1부로 소개되어 있다. 대답은 도시의 생성이다.

2부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의 문화의  광기어린 위정자들의 살인과 폭행,강간,약탈등을  소개하고 있다. 죄없는 아이들을 돌에 구워 살인을 한다든지,민중을 수탈하기 위해서 행한 갖가지 위정자들의 만행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로마시대로 이어진다.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 찬양하던 로마의 정치체제는 콜린윌슨의 눈에는 노예로 만들어진 도시로 묘사된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가들간의 살인과 광기는 로마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에게 한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로마가 잘한것은 도시공학정도라고 치부해도 좋을정도다.

그다음부터는 중세와 십자군,칭기스칸으로 이어지는 중세시대의 서아시아와 유럽을 매우 어둡게 묘사하고 있다.

3부에서부터는 현대와 근대에 이르는 광기어린 살인,강간등을 다루고 있다.

왜 이런 전쟁이나 살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것일까?

필자는 전쟁으로 인한 살육은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보고있다.

남미의 어느라에서 내전으로 인해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고 해도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사람들은 그런일이 있구나하고 지나치고 만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등에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일이'하고 인간성에 대해 치를 떨게된다.

바로 무관심이다.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은 소위 사상과 국가관 종교관에 의해 인본주의정신은 없어지고 만다.

일본의 남경대학살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그런 맥락이다.

더욱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은 지금도 팔레스타인들을 학살하고 있다.

이것 모두가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 무관심에 정치적,종교적이유를 부여하면 보통의 인간도 광기어린 살육자가 된다는것이다.

2010. 8. 23. 12:53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 현대와 과거 그리고 전통과 신문명

 
<いつでも誰かが> 上々颱風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엔딩테마 원곡 라이브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心がふさいで 何も見えない夜
きっと誰かがいつもそばにいる
生まれた街を 遠く離れても
忘れないでおくれ あの街の風を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が いつもそばにいる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기억해줘 멋진 그 이름을

마음을 닫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꼭 누군가 항상 곁에 있어

고향을 등지고 멀리떠나도

잊지말아줘 고향 거리의 바람을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그래 꼭 너가 항상 곁에 있어


雨の降る朝 いったいどうする
夢からさめたら やぱり一人かい


비가 내린 아침 어떡하지

꿈에서 깨면 역시 혼자일까


* いつでもおまえが きっとそばにいる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기억해줘 멋진 그 이름을


爭いに傷ついて 光が見ないなら
耳をすましてくれ 歌が聞こえるよ
淚も痛みも いつか消えてゆく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の 微笑みがほしい

風の吹く夜 誰かにあいたい
夢に見たのさ おまえにあいたい


싸움에서 상처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봐 노래가 들릴거야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꺼지고

그래 꼭 너의 미소가 보고싶어

바람이 부는 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꿈에서 보았어, 너와 만나는걸



1996년 하이텔 일본어동호회 회원이었던 때, 그당시엔 일본어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국내 상영및 관람이 불법이었다. 김대중정권이 들어와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문화의 자신감이 생겼는지, 일본 극영화의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지극히 메니아들끼리만 비디오 카피해서 돌려보던, 지금보면 한류,한류 하는데 왜 그렇게 일본문화에 대해 위정자들이 겁을 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영화는 헐리우드를 지향했지, 결코 일본식 영화는 지향하지 않았다.

어쨋든 당시에 일본어판 영화몇편을 불법더빙해서 하이텔 동호회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었는데, 답례로 온 비디오가 平成狸合戦ポンポコ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당시로서는 자막도 없는 이 영화를 보기위해, 하이텔 및 천리안의 대본 자료실을 뒤져 그 유명한 이 찬진의 아래한글 2.0으로 프린터해서 영화와 대본을 번갈아 가며 봤던 기억이 새롭다.

이 만화 한편을 보고 나서, 느꼈던 감정은 우선 굉장히 슬픈 내용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내용 하나하나에는 슬픈애기가 없다. 변신술을 가진 너구리들이 계속적인 인간의 토지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여러 대책을 꾸미지만 결국 실패하고 너구리들도 인간으로 변신해서 인간들의 삶속에서 산다는 내용이다.

어찌보면,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해 “자연을 지키자”라는 단순 구호의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다보고 나면, 환경문제만이 아닌 현대인의 일상속의 비극과 현대문명으로 인한 일본 전통적인것에 대한 파괴에 대한 아픔을 그리고 있다.

1994년 미국헐리우드 대 히트작 디즈니의 라이온킹이 일본에서는 굴욕을 맞봐야만 했다.

그 굴욕을 준 작품이 바로 이 平成狸合戦ポンポコ(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이다.

이 작품은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도 노미네이트되어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너구리들은 인간들의 무조건적 개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점점 잃어버리고 만다.

쇼우스케 너구리들은 그에 대항하여 인간이나 다른 사물,귀신으로 변신하여 인간들을 놀려준다. 하지만 돈의 논리를 아는 인간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산림을 개발하여 들어온다.

여기에서 너구리들은 인간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아니 현대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동화된다.  전통음식보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좋아하게 되고, 테레비앞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는 재미에 대개의 너구리들은 넊을 잃게 된다.. 점차 너구리들의 기존 문화는 파괴되어지고 인간은 싫지만, 인간들이 가져다 준 편안함과 세속적 즐거움에 동화되어 간다.

전통을 지켜 사느냐 아니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인간들 사이에 묻혀 사느냐로 고민하게 되는 너구리들…인간에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세력이 생기는가 하면, 인간들에게 너구리의 존재를 알려서 더이상의 개발을 중지시켜달라는 온건적인 너구리들로 파벌이 생기게 된다.

끝내 너구리들은 이 방법 저방법으로 인간들을 달래지만,   개발논리를 앞세운 인간들에게 지고만다.

마지막으로 너구리들이 할수 있는것은 50년전의 마을의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주는것…

결국 인간세계에서 살아남은 너구리들은, 윤겔(한국의 드링크제)을 마시면서 현대인의 모습으로 정신없이 살아가고, 너구리로 남고자 했던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동물보호지역으로 쫒겨나 생활하게 된다는 이야기…

현대 물질만능주의의 일본인들이 그동안 잊고있던 일본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의 풍요로움속의 개개인의 고달픔…그 안에 고민하는 현대의 일본인…  물질의 풍요요로움과  향락,편안함속에서도 언제나 지치고 힘들어 하는   현대의 일본인… 잊고 살던 전통적 가치 속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한가롭고 평화롭던 그 때 그시절을 그리워하는건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햄버거를 먹고, 인간의 음식을 먹고 살아도 너는 너구리야..!

아무리 서구문명속에서 서구문명의 흉내를 내고 살고 있어도 너는 서구인이 아닌 일본인이야….!

지금의 한국인…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 나는 같은 지브리이지만 미야쟈키 하야오보다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이 훨 뛰어나다고 보인다. 추억의 방울방울,야마다군,호타루노 하카(반딧물 묘)등에서 보여준 그의 예리한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은 미야쟈키의 동화속 이야기보다는 훨 무게감있게 머리와 가슴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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