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t & Movie'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1.23 어처구니 없는 역사드라마 ' 불모지대' 4
  2. 2010.08.23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 현대와 과거 그리고 전통과 신문명
  3. 2010.04.21 닥터후와 은하철도999
2013. 1. 23. 00:39

어처구니 없는 역사드라마 ' 불모지대'

웹검색도중 일본에서 가장 오락적인 티비방송국에서 왠일로 NHK틱한 드라마를 해준적이 있어 다운받아 시청했습니다. 일본어 실력이 도퇴되었는지 10편까지는 원어로 보다가 신경쓰기 싫어서 11편부터는 한국어 자막을 켜놓고 보았는데요..





드라마의 이름은 '불모지대'...

원작소설이 있는거 같아 찾아보았더니 하얀거탑으로 유명한 야마자키 토요코씨의 작품이더군요.

주인공도 하얀거탑의 주인공 唐沢寿明(카라자와 토시아키)고...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소년 실사판 주인공으로 알려져있죠. 아시겠지만, 하얀거탑이든 불모지대든 동일인이 작가인 작품입니다.





각설하고 불모지대를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역사관이 대충 보여집니다. 정말 짜증나게 하죠.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람)


주인공의 이름은 이키 다타시, 실존 인물인 세지마류죠를 모델로 삼아 5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고도성장기의 일본사회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모지대의 주인공 이키다타시의 실존모델인 세지마류죠



타락한 정치가 그룹이 있고, 그에 편승해 여러 이권으로 돈을 벌려는 경제인들이 등장합니다. 갖은 권모술수와 배반,배신,아첨,파벌짓기가 그려지면서 주인공의 구국의 결단과 대의, 그리고 그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설이나 극영화로서도 아무런 하자가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안에 나타나는 이야기 세팅들이 나를 무지 짜증나게 하더군요.


드라마속에 나오는 여러 상황설정들중 나를 짜증나게 하는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다.


일본만화중에 반딧불의 묘라는 슬픈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미야쟈키 하야오의 친구인 다카하타 이사오라는 거장감독이 지브리에서 만든 작품인데, 일본인 남매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이 만화영화는 나중에 실사드라마,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 만화영화는 일본에서 대 히트를 친 작품입니다. 하지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주인공 남매를 일본인으로 설정하지 않고, 난징이나 상하이,하얼삔의 중국인 남매로 설정했다면 비록 일본내에서 흥행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을겁니다.



일본의 만화영화 감독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만화영화 감독이 되었을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이 만화영화에서도 결코 일본정부나 일본군부를 두둔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참화속에서 죽어가는 어린 두 생명을 아련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공습에 의해 어머니가 죽고, 두 아이가 고아가 되어 죽는다는 설정만 있지, 어디에도 무능했던 자국정부의 정치가와 군인들을 탓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만화영화에서는 일본 자신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역으로 피해자로 바뀌어 설정되어 있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학살당한 중국의 어린이들)

언제인가 아베라고 하는 일본인과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 오끼나와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일본남방의 어느섬에서 민간인 몇천명이 미군의 공격을 피해 본토로 배를 타고 피난을 오는 도중 미군의 공습에 전원 사망한 사건이 있다고 합니다. 이 민간인들이 너무도 불쌍하지 않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대답했습니다. '전쟁이니깐 어쩔수 없는것이다'라고요..'천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한 당신 나라 사람들이 당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것이에요'


드라마 불모지대에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됩니다.

주인공 이키다타시는 전쟁당시 일본군부 수뇌부의 작전참모를 역임했던 전쟁범죄자이고 11년간 시베리아에서 노역생활을 하게 됩니다.


실존인물인 세지마류조도 실제 패전후 전쟁범죄자가 되어 시베리아에서 11년동안 노역생활을 하지요.

더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세지마류조는 재판정에서 판결받은 죄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죄값을 받게 되는것이죠.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부당하게 처우받는 일본인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소련의 정치상황이나 인권을 생각하면 상상이 갑니다만, 그들이 대륙 곳곳에서 벌였던 잔혹함과 비할수 있겠습니까?



2010. 8. 23. 12:53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 현대와 과거 그리고 전통과 신문명

 
<いつでも誰かが> 上々颱風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엔딩테마 원곡 라이브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心がふさいで 何も見えない夜
きっと誰かがいつもそばにいる
生まれた街を 遠く離れても
忘れないでおくれ あの街の風を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が いつもそばにいる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기억해줘 멋진 그 이름을

마음을 닫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꼭 누군가 항상 곁에 있어

고향을 등지고 멀리떠나도

잊지말아줘 고향 거리의 바람을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그래 꼭 너가 항상 곁에 있어


雨の降る朝 いったいどうする
夢からさめたら やぱり一人かい


비가 내린 아침 어떡하지

꿈에서 깨면 역시 혼자일까


* いつでもおまえが きっとそばにいる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언제든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기억해줘 멋진 그 이름을


爭いに傷ついて 光が見ないなら
耳をすましてくれ 歌が聞こえるよ
淚も痛みも いつか消えてゆく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の 微笑みがほしい

風の吹く夜 誰かにあいたい
夢に見たのさ おまえにあいたい


싸움에서 상처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봐 노래가 들릴거야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꺼지고

그래 꼭 너의 미소가 보고싶어

바람이 부는 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꿈에서 보았어, 너와 만나는걸



1996년 하이텔 일본어동호회 회원이었던 때, 그당시엔 일본어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국내 상영및 관람이 불법이었다. 김대중정권이 들어와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문화의 자신감이 생겼는지, 일본 극영화의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지극히 메니아들끼리만 비디오 카피해서 돌려보던, 지금보면 한류,한류 하는데 왜 그렇게 일본문화에 대해 위정자들이 겁을 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영화는 헐리우드를 지향했지, 결코 일본식 영화는 지향하지 않았다.

어쨋든 당시에 일본어판 영화몇편을 불법더빙해서 하이텔 동호회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었는데, 답례로 온 비디오가 平成狸合戦ポンポコ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당시로서는 자막도 없는 이 영화를 보기위해, 하이텔 및 천리안의 대본 자료실을 뒤져 그 유명한 이 찬진의 아래한글 2.0으로 프린터해서 영화와 대본을 번갈아 가며 봤던 기억이 새롭다.

이 만화 한편을 보고 나서, 느꼈던 감정은 우선 굉장히 슬픈 내용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내용 하나하나에는 슬픈애기가 없다. 변신술을 가진 너구리들이 계속적인 인간의 토지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여러 대책을 꾸미지만 결국 실패하고 너구리들도 인간으로 변신해서 인간들의 삶속에서 산다는 내용이다.

어찌보면,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해 “자연을 지키자”라는 단순 구호의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다보고 나면, 환경문제만이 아닌 현대인의 일상속의 비극과 현대문명으로 인한 일본 전통적인것에 대한 파괴에 대한 아픔을 그리고 있다.

1994년 미국헐리우드 대 히트작 디즈니의 라이온킹이 일본에서는 굴욕을 맞봐야만 했다.

그 굴욕을 준 작품이 바로 이 平成狸合戦ポンポコ(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이다.

이 작품은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도 노미네이트되어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너구리들은 인간들의 무조건적 개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점점 잃어버리고 만다.

쇼우스케 너구리들은 그에 대항하여 인간이나 다른 사물,귀신으로 변신하여 인간들을 놀려준다. 하지만 돈의 논리를 아는 인간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산림을 개발하여 들어온다.

여기에서 너구리들은 인간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아니 현대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동화된다.  전통음식보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좋아하게 되고, 테레비앞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는 재미에 대개의 너구리들은 넊을 잃게 된다.. 점차 너구리들의 기존 문화는 파괴되어지고 인간은 싫지만, 인간들이 가져다 준 편안함과 세속적 즐거움에 동화되어 간다.

전통을 지켜 사느냐 아니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인간들 사이에 묻혀 사느냐로 고민하게 되는 너구리들…인간에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세력이 생기는가 하면, 인간들에게 너구리의 존재를 알려서 더이상의 개발을 중지시켜달라는 온건적인 너구리들로 파벌이 생기게 된다.

끝내 너구리들은 이 방법 저방법으로 인간들을 달래지만,   개발논리를 앞세운 인간들에게 지고만다.

마지막으로 너구리들이 할수 있는것은 50년전의 마을의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주는것…

결국 인간세계에서 살아남은 너구리들은, 윤겔(한국의 드링크제)을 마시면서 현대인의 모습으로 정신없이 살아가고, 너구리로 남고자 했던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동물보호지역으로 쫒겨나 생활하게 된다는 이야기…

현대 물질만능주의의 일본인들이 그동안 잊고있던 일본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의 풍요로움속의 개개인의 고달픔…그 안에 고민하는 현대의 일본인…  물질의 풍요요로움과  향락,편안함속에서도 언제나 지치고 힘들어 하는   현대의 일본인… 잊고 살던 전통적 가치 속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한가롭고 평화롭던 그 때 그시절을 그리워하는건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햄버거를 먹고, 인간의 음식을 먹고 살아도 너는 너구리야..!

아무리 서구문명속에서 서구문명의 흉내를 내고 살고 있어도 너는 서구인이 아닌 일본인이야….!

지금의 한국인…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 나는 같은 지브리이지만 미야쟈키 하야오보다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이 훨 뛰어나다고 보인다. 추억의 방울방울,야마다군,호타루노 하카(반딧물 묘)등에서 보여준 그의 예리한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은 미야쟈키의 동화속 이야기보다는 훨 무게감있게 머리와 가슴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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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1. 16:55

닥터후와 은하철도999


우주를 무대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한다는 스토리는 환타스틱 하면서도 솔솔한 재미가 있습니다. 

최근에 닥터후 2005 시즌부터 9대 10대 11대 닥터후까지 다 보았습니다. (물론 11대는 주말에 토렌토를 통해서 구해보고 있습니다만...)

우주 판타지류로서는 닥터후가 약간 유치한면도 있지 않지만, 그 중 수작들도 매우 많은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특히, 10대 닥터에서의 침묵의 도서관과 블링크 에피소드는 "죽이는군" 이라는 감탄이 나올정도로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역작임은 틀림없습니다.  


(스포성 있습니다.)

행성전체가 도서관으로서 독타가 도서관에 왔을때는 도서관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에피소드입니다. - Season4 ep8,9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절친으로 부터 과거로부터의 메세지를 받았는데 그안에는 커다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Season 3 ep 10

다른 훌륭한 에피소드도 많지만 현재로선 최고 에피소드는 이 두 에피소드를 최고로 뽑고 싶군요..
예술성이나 긴장감이나 두 에피소드 모두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뽑고 싶습니다..

그런데 닥터후를 보면서 왜? 은하철도 999가 생각나는지 모르겠군요...
두 작품은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섬나라인 일본과 영국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으나.....

1. 시공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여행을 합니다. 은하철도999에서의 시간성에피소드라든지, 각기 독특한 성격이 있는 행성들을 방문하는 에피소드등은 그 모태가 비슷합니다.


단 차이점이라면 닥터후는 인류의 역사속에서의 시간여행에 상당한 에피소드를 많이 있는 반면에 은하철도999는 기계인간과 휴먼이라는 물질문명과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할애하고 있죠...

2. 탄생...
은하철도는 1970대부터 시작된 큐슈출신의 마츠모토레이지씨의 코믹스연재를 모태로 삼고 있습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은하철도999가 더 오래되었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실제로 닥터후의 시작이 더 빨랐습니다.. 닥터후는 1960대에 아동용 교육드라마로 기획,제작되었으나, 교육보다는 호러나 SF면으로 발전되어 현재의 닥터후가 되었죠... 그러므로 닥터후가 좀더 오래되었으나 은하철도의 기원은 미야자와 겐지의 1930년대 동화를 기원으로 삼고 있으니 두 작품 모두 꽤 오래된 작품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3. 물질과 휴머니즘

두 작품 모두, 물질과 휴머니즘 속에서 고뇌하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닥터후는 약간 은유적으로 은철은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닥터후의 절대악인 달렉과 은철의 프로메테우스는 휴먼들을 말살시키려는 존재이지만...프로메테우스와 달렉은 근원적으로 틀립니다.. 프로메테우스와의 비교는 달렉보다는 사이버맨으로 매치시키는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지네요...프로메테우스는 육체적으로 완벽한 인간세계를 만들려다 휴머니즘이 말살된 경우이고, 달렉은 그 근원부터 자기외의 고등생명체는 모두 말살 시키는 존재이니깐요...엑스터미네이터...ㅋ


4. 주인공들..

이점이 이 포스팅을 하게된 주요원인입니다...

닥터후는 사람이 직접연기하는 실사영상이고 은하철도999는 에니메이션입니다. 그러므로 오랜세월동안 방영한 닥터후는 실사영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재생이라는 독특한 닥터의 생리현상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연기한 닥터가 닥터역을 그만두어도 재생시스템을 통해서 다음 닥터의 주연을 바꿀수 있었죠..

하지만 실사동화가 아닌 에니메이션 은하철도999는 그럴 필요가 전혀없다는 것이죠...
 
여행을 주도하는 닥터와 은하철도의 메텔은 여행 수행능력 100%인 완벽한  존재입니다. 해결못하는것이 거의 없죠.. 그에 비해 닥터의 컴페니언이나 은철의 데츠로의 경우 사건 사고에 대해 거의 무지한 정도로 무대포로 직면합니다만.. 해결의 실마리는 거의 이 컴페니언들에 의해 이루어지죠...

흥미로운 점은 은철의 데츠로가 8등신의 완벽한 외모를 가진 인물이 아니듯이 닥터후의 컴페니언들도 다소 보통사람같은 캐릭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즌 3의 마샤가 그래도 이쁜 캐릭터였지만, 백인 주류사회인 영국에서 소수종족인 흑인을 컴페니언으로 삼은점도 두 작품의  여행모두 보는 이로 하게끔 보통사람도 꿈꿀수 있는 여행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주얼한 특출난 외모와 육체가 아니어도 보통사람들이 공감하게끔 로맨스와 감동을 만들어가고 있는것이죠...

그 점에서 저는 두 작품이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완벽한 파트너에 비해 여행을 따라나서는 컴페니언들은 보통사람 캐릭터를 캐스팅하는것이 더 먹힌다!)